카테고리 없음

지도에도, 블로그에도 없는 나만의 공간 그리고 그곳을 조용히 지켜야만 하는 이유

맹모삼천지교 2025. 7. 8. 09:37

지도에도, 블로그에도 없는 나만의 공간 그리고 그곳을 조용히 지켜야만 하는 이유
지도에도, 블로그에도 없는 나만의 공간 그리고 그곳을 조용히 지켜야만 하는 이유

왜 알려지면 안 될까?

사람들이 모르는 공간을 안다는 건 묘한 우월감과 동시에, 책임감을 줍니다. 오늘은 지도에도, 블로그에도 없는 나만의 공간 그리고 그곳을 조용히 지켜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SNS에도, 검색창에도 안 뜨는 진짜 동네의 공간들. 그곳들은 대개 입소문이 아닌 ‘입막음’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알려지지 않아서 다행인’, 그리고 ‘알려지면 안 될 이유가 확실한’ 공간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소개하는 순간 모순이 되지만, 이 기록은 마치 은밀한 일기처럼 남겨두고 싶어 시작합니다.

폐공장을 지나야만 나오는 돌담책방


서울 외곽의 한 주택가. 이곳은 네이버 지도에선 그냥 ‘창고’로 표기되며, 카카오맵에도 위치 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택 사이 골목길로 7분쯤 걸어 올라가면 철제 문이 녹슨 폐공장이 나오고, 그 뒤로 낮은 돌담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공간이 숨어 있습니다. 거기엔 간판도 없이 오래된 책장과 전구 몇 개가 걸린 책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도 없고 주인도 일주일에 두 번만 나옵니다. 책은 직접 계산하지 않고, 책상 위 놓인 나무함에 ‘자율 계산’을 하는 시스템.

여기서 파는 책들은 모두 절판본이나 작가가 직접 기증한 비매품입니다. 조용히 읽고, 마음에 들면 가져가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안내문이 A4 한 장으로 붙어 있습니다.


한강변에서도 비껴간 숲속 의자 세 개

이 공간은 주인이 운영한다기보단 ‘보호하고 있는’ 장소에 가깝습니다. 폐공장 부지 일부를 무단으로(?) 쓰는 중이라, 인원이 많아지면 철거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의 분위기는 조용함에서 생기는 겁니다. 포토존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 진짜 이곳을 필요한 누군가에게 닫혀버립니다.


잠실대교 남단에서 시작해 성내천 방면으로 걷다 보면, 갑자기 자전거도로와 강변 산책로가 갈라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길가에서 살짝 벗어나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나무 세 그루에 둘러싸인 평지가 나오고 거기엔 오래된 나무 의자 세 개가 조용히 놓여 있습니다. 어쩌다 생긴 공간일까 싶지만, 알고 보니 예전 낚시꾼들이 숨겨놓은 자리라고 합니다.

지금은 누구의 것도 아닌, 그러나 누구보다 애착이 있는 몇몇 사람들만이 사용하는 자리입니다. 주말 아침이면 누군가 커피를 내려 마시고, 평일 저녁이면 기타 치는 청년이 앉아 있기도 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자연의 흐름 때문입니다. 이 자리는 인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아 모기, 벌레, 뱀도 출몰하는 곳입니다. 아무 대비 없이 찾아오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이유는 ‘남기고 가는 흔적’입니다. 한 번은 SNS에서 이 장소가 살짝 노출된 후, 누군가 음식물과 쓰레기를 두고 갔습니다. 그 이후 이 공간의 주인들—즉 평소 이곳을 조용히 사용하던 몇몇은 자리를 잠시 폐쇄했습니다. 조용한 자연 공간은 의외로 깨지기 쉽습니다.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 동네 재봉틀 할머니의 마당
이 공간은 정말 ‘공간’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작습니다. 낡은 주택 앞 마당 한 평 남짓한 곳. 동네에선 ‘바느질 할머니’라 불리는 80대 중반 여성 한 분이 살고 계십니다. 이분은 현금을 받지 않습니다. 오직 채소나 반찬, 또는 편지로만 보답을 받습니다. 재봉틀은 1970년대 미싱기인데 아직도 완벽하게 작동합니다. 동네 아이들의 가방끈이 찢어지면, 할머니 댁으로 달려갑니다. 중학생 아이들도 옷 자수 하나를 부탁하고 돌아갑니다.

가끔은 낮에 마당에 조그마한 평상이 놓이고, 누군가는 마실을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나 외부인은 이 마당에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합니다. 지도에도 없고, 검색해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노출되면, 이 마당은 단순히 ‘예쁜 레트로 공간’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작고 조용한 공간을 지키는 일


이 마당은 단지 한 할머니의 공간이 아닌, 세대와 동네의 기억이 축적된 ‘살아 있는 기록물’입니다. 갑자기 외지인이 많이 찾아오면 할머니의 건강이 영향을 받습니다. 이미 두 차례 이상 폐렴으로 입원하셨던 터라, 오가는 사람의 증상 하나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한 번은 ‘동네 스냅 촬영지’로 알려져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질 뻔했지만, 주민들이 막아서 겨우 막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좋은 장소’를 발견하면 가장 먼저 드는 충동은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어떤 공간은 공유되는 순간 무너지기도 합니다. 요즘은 누군가의 동선, 커피 한 잔, 책 한 권도 공유 대상이 되지만, 때로는 ‘함께하지 않는 것’이 더 깊은 연결을 만들어 줍니다.

이번 글에 나온 세 공간은, 어쩌면 곧 사라질 수도 있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기되, 정확한 위치나 인물, 디테일은 담지 않았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기억에 은은히 남길 수 있도록. 만약 여러분의 동네에도 이런 공간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대신 그 공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요?

아름다운 장소가 아닌, _지켜야 할 관계_라는 것.
우리는 그 조용한 윤리를 한 번쯤 마음에 새겨볼 때입니다.